자유자이신 어머니하나님의 자녀로 영적 흑단나무에서 해방된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2015. 11. 23. 07:26

자유자이신 어머니하나님의 자녀로 영적 흑단나무에서 해방된 하나님의교회/패스티브닷컴

 

 

 

 

<참고자료>
1. ‘흑인노예와 노예상인-인류 최초의 인종차별’, 시공사
2. ‘현대판 노예노동을 끝내기 위한 노예의 역사’, 예지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실에서 충격적인 전시물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노비 매매문서였는데, 놀랍게도 ‘사람’의 ‘가격’이 소값보다 낮았습니다.


조선 숙종 38년(1712년)의 이 고문서는 이 생원이 ‘소유’하고 있던 노비 모자를 다른 사람에게 팔면서 작성된 일종의 거래명세서였습니다.

노비 모자, 즉 두 사람의 몸값은 45냥. 각각 23냥쯤으로,

19세기 전후 소 한 마리의 가격이 30냥 정도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소값보다도 못한 몸값인 셈입니다.


조선시대 노비는 주인집에 매여 주인의 시중을 들고 농사를 짓고 온갖 집안일을 했는데,

이처럼 주인의 필요에 따라 다른 집에 팔려가기도 했습니다.

어디, 노예가 사람 대접 못 받는 일이 조선에만 있었겠습니까.

 

노예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집니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시대부터 있었는데, 노예들은 가축과 동일한 ‘재산’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황소처럼 코뚜레가 채워졌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주인은 그들을 팔거나 죽일 수 있는 권리도 행사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빚을 갚지 못한 시민들이 재판을 받고 노예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 동부해안을 탐험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흑인들을 잡아 팔기 시작했습니다.

흑인 매매는 꽤 짭짤한 수입을 남겼고, 흑인 노예는 곧 주요 ‘상품’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아메리카를 정복한 스페인 사람들은 서인도제도나 고원지대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팔았습니다.

유럽과 아프리카, 아메리카 세 대륙의 대규모 교역이 이루어진 동안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물건과 맞교환되어 팔려나갔습니다.

 


17세기, 지중해 남부연안을 정복한 이슬람교도들은 북아프리카로 손을 뻗기 시작해 ‘이교도’인 기독교인들을 노예로 매매했습니다.

모로코와 리비아 사이에 위치한 아프리카 항구에서 20~3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노예로 팔렸다고 합니다.


18세기, 커피, 설탕, 담배는 새로운 기호품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곧 필수품이 되었고 다량의 생산이 필요했습니다.

흑인 노예는 열대작물인 이것들을 생산해내는 데 있어 매우 적합한 ‘기계’였습니다.

백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많은 ‘상품’들을 거둬들였습니다.

흑인 노예는 상인들 사이에서 검은 빛깔이 특징인 ‘흑단나무’라고 불렸습니다.

‘흑단나무’는 구리, 철제품, 유리세공품 등 물건과 교환되었습니다.

때로는 건강한 노예와 병든 노예가 ‘번들’로 한데 팔리기도 했습니다.


상품이 된 노예들은 팔릴 때까지 머물러 있을 수용소를 향해 나무로 만든 형구 같은 것을 줄줄이 목에 꿴 채 열을 지어 이동했습니다.

겁에 질린 노예들은 수용소에 도착한 뒤 벌거벗겨진 채로 몸 구석구석을 검사받았습니다.

검사가 끝나면 시뻘겋게 달군 쇠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상인들이 자신의 ‘상품’을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노예 시장이 열리면 노예들은 시장에 끌려나가 진열되었습니다.

고객들은 노예들의 상태를 깐깐하게 살폈습니다. 상태가 안 좋은 노예들은 헐값에 거래되었습니다.

결함이 없을 경우 너무 어리거나 늙지 않았다면 아메리카로 향하는 콩나물 시루 같은 노예선에 올라야 했습니다.

힘이 센 남자들은 사슬에 묶인 채 둘씩 발목에 족쇄가 채워졌고, 여자들은 사슬에만 묶였습니다.

멀고도 험한 항해를 하는 동안 고향을 떠난 슬픔을 이기지 못하거나 자신의 암울한 미래를 짐작한

노예들이 바다 속으로 몸을 던지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선장은 아메리카에 도착한 후 노예들을 최대한 고가에 넘기기 위해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제공하고 머리와 수염을 다듬고 기름을 바르는 등 상품을 손질했습니다.

노예선의 외과의사는 눈에 띄는 결함을 고치는 일을 담당했는데, 이 작업은 ‘표백’이라 불렸습니다.

표백 작업이 끝난 후 상품들은 갑판에 진열되었습니다.

매매 광고를 보고 모여든 아메리칸 고객들에게 낙점되면 상품의 가슴이나 어깨 위에는 불에 달군 은제 낙인으로 새 주인의 이니셜이 찍혔습니다.


노예들은 목화밭, 커피농장, 사탕수수농장 등의 기계가 되었습니다.

삼엄한 감시와 처벌, 억압 속에 관리인들로부터 하루 수확량을 체크당했고,

저녁 8시부터는 통행이 금지되고, 외출은 물론 외부인과 만나는 일도 금지되었습니다.

특히 자유를 찾은 흑인과의 접촉은 더욱 철저한 통제를 받았습니다.

주인의 말에 복종하지 않거나 도주를 시도하거나 도주했다 잡힌 노예들에게는 잔인한 학대가 뒤따랐습니다.

수십 대의 채찍질, 낙인, 거세, 수족 절단 등의 고문을 당했습니다.


노예의 결혼, 가족관계는 법적으로도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주인의 필요에 의해 가족이 팔려나가면 찢어지는 생이별의 고통도 순응해야 했습니다.

신분은 대물림되어 노예 부모를 둔 자녀들은 자연히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라는 주홍글씨를 지우기 위한 방법은 면제를 받거나 도주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는 것밖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지만

도주나 반란에 대한 주인의 진압은 극도로 잔혹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고팔고, 사람이 사람에 의해 자유를 억압당한 채 살아야 하는,

이 참담한 역사는 유럽과 미국의 경우 19세기 중엽, 한국은 1895년에 이르러서야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영적 세계에서도 이 잔인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영적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전적으로 하나님의교회 성령과 신부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 성령 안상홍님께서 알려주신 생명의 성령의 법을 통해 하나님의교회 자유자이신 어머니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죄와 사망의 종이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들이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버지 하나님만 알고서는 종의 신분을 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자유자인 아버지(아브라함)를 만났지만 종의 신분인 어머니(하갈)를 만나

종의 신분을 벗지 못하고 유업을 이어받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성경이 이스마엘을 ‘계집종의 자녀’라고 일컫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삭이 자유자인 어머니(사라)를 만나 아브라함가(家)의 상속자가 되었듯이 자유자가 되려면 반드시 자유자인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교회 어머니하나님의 자녀들처럼 말입니다.



신분은 대물림되기 마련이어서 종의 자녀, 노예의 자녀로 태어나면 숙명적으로 종, 노예가 되어 살아야 합니다.

 자유자인 부모를 둔 자녀라면 당연히 자유자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교회에서 자유자이신 아버지 안상홍하나님과

하늘 예루살렘, 우리 어머니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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